덜어내기 : Less is more

2019년 소다미술관은 ‘더하다’는 개념이 아닌 작품 속 재료를 덜어냄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6인의 작가와 《덜어내기 : Less is more》 전을 마련했습니다. 현재 우리의 사회는 피상적인 과잉 정보와 대량 상품들을 만들어내며 대중에게 끊임없는 선택과 소유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풍요를 넘어선 욕망의 시대로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더하는 삶은 오히려 본질을 잃게 하며 쉽게 피로감을 유발합니다.

생텍쥐페리는 “완전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소다미술관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과도함을 덜어내는 힘이라 보았습니다. 《덜어내기》 전은 ‘더하기’가 아닌 ‘빼기’에 중심을 두어 과도함을 벗음으로써 얻는 자유로움과 본질에 집중하여 사유해 보는 공간을 제시합니다.

작가들은 지워내고, 긁어내고, 축약하고, 녹여내는 행위를 통해서 본질에 접근하고 자신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됩니다. 관객은 이러한 ‘덜어내기’ 행위를 통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그들의 덜어낸 행위의 과정을 상상하며 따라가게 됩니다. 더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는 다양하게 덜어낸 방법으로 드러난 작가의 중심 생각을 들여다보고, 재료 본연의 아름다움에 집중해 보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와 삶을 대하는 데 있어, 전환의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구지윤

구지윤은 도심 속 공사 현장을 화면 위에 재현한다. 건물을 쌓고 허무는 분주한 공사 현장은 맹렬한 소음과 함께 과잉으로 치닫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작가는 물감을 얹고 긁어내고 펴내고 덜어내는 다양한 형식적 시도를 통해 캔버스 화면 위에 공사 현장을 구축한다. 작품은 도시의 구조물이 뒤섞인 추상적인 형상이며, 이는 예측 불가능한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으로 나타난다. <보라색 소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사장의 굉음을 시각적으로 번역하여 보여준 작품으로, 관객은 일상이 되어버린 소음과 그 안에서 무뎌진 현대인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백인혜

백인혜는 그리기가 아닌 지우는 행위에 집중하며 풍경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천착해왔다. 작가는 화면 위 콩테를 가득 채우며 검은 화면을 만든 뒤, 지우개로 지우며 구체적인 형상을 그려낸다. 지우는 행위는 사라지고 없애는 부정적인 의미로서가 아닌 창문의 빛과 같이 공간을 밝히며 확장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검은색의 평면은 작가의 지우는 행위를 만나 3차원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하늘나무 나무하늘>은 숲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의 나무 사이로 빛이 스며드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관객은 지워지며 드러나는 빛의 흐름을 따라가며 작가가 마련한 공간 속에 머물며 쉬어 갈 수 있다.

신선주

신선주는 흑백사진 속 건축물의 모습을 오일파스텔을 사용하여 손으로 펴 바른 뒤, 예리한 니들로 판화와 같이 섬세하게 긁어내며 흑에서 백까지의 다양한 톤을 만들어 낸다.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는 건축물은 시대성과 공간적 특성, 문화성을 간직하며 작가의 직관적인 시선에 따라 재구성되어 있다. 이번 전시 작품인 시리즈는 전체를 검은 면으로 칠한 뒤, 정면에서 본 건축물의 특정 부분을 긁어낸 모습이다. 관객은 재료의 물성이 드러나는 깊고 고요한 검은 화면에서 떠오르는 세밀하고 아름답게 표현된 건물의 장식에 몰입하며 다양한 시각적 경험을 얻게 된다.

이해민선

이해민선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관찰하고 인공과 자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찾으며 이를 시각적으로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 출품작은 화학약품으로 풍경 사진의 표면을 녹여 새롭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작가는 사진이 가진 기록성을 해체한다. 인쇄 방식에 따라 다르게 녹아내리는 이미지는 하나의 물질로서 변모하며, 이미지가 가진 맥락에서 나아가 붓질의 움직임과 속도에 따라 화면 위 회화로 다시 태어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그 곳> 시리즈는 잡지 속 실제로 존재하지만 직접 가보기 어려운 풍경 이미지를 선별하여 녹여낸 작품으로, 관객은 흔적만 남은 이미지 위 새로운 풍경을 덧입힐 수 있다.

조문희

조문희는 자신을 둘러싼 풍경을 기록하고 이를 재구성하는 사진 작업을 천착해왔다. 작가는 건축물의 맥락과 구체적인 정보를 생략하며, 장소의 특성이 사라진 이름 없는 공간의 모습을 제시한다. 작품 속 공간들은 반복적으로 마주치며 의미 없는 형태로만 남아 있는 일상적인 공간을 보여준다. 시공간이 멈춰진 초현실적인 풍경은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며, 생경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관객은 미술관 공간 속 스며든 빈 풍경의 사라진 정보를 추측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장소로 상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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